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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곡성> : 불안의 집합체, 믿음의 붕괴, 의심 속 인간 본성

by smallfamlog82 2025. 7. 15.

※ 본 이미지는 영화 홍보를 위한 포 스터 이미지입니다.

 

<곡성>은 평범한 시골 마을 ‘곡성’에서 벌어지는 의문의 연쇄 살인 사건과, 그 속에서 점점 광기로 물들어가는 한 경찰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전개됩니다. 주인공 종구(곽도원 분)는 정체불명의 외지인(쿠니무라 준)의 등장 이후 벌어지는 원인 불명의 살인과 발작 사건들을 조사하게 됩니다. 사건이 자신의 딸에게까지 영향을 미치자 종구는 이성적 수사관에서 광신에 가까운 감정적 아버지로 점차 변해갑니다. 영화는 종교적 상징과 이질적 정서, 그리고 설명되지 않는 불가해한 존재들을 통해 공포를 증폭시키며, 끝까지 ‘무엇이 진실인가’에 대한 판단을 유보한 채 관객을 혼란에 몰아넣습니다. 장르적 틀을 파괴하면서도, 인간의 근원적인 두려움과 의심에 집요하게 접근한 작품입니다. 나홍진 감독 특유의 연출은 현실과 비현실, 신앙과 미신, 선과 악의 경계를 흐리며, 관객으로 하여금 어느 것도 확신할 수 없게 만듭니다. 영화는 등장인물 누구도 완전히 믿을 수 없도록 설정하고, 인물들의 행동과 대사가 오히려 상황을 더 모호하게 만듭니다. 이로 인해 <곡성>은 단순한 공포 영화가 아닌, 믿음과 불신의 간극을 치밀하게 탐색하는 미스터리 스릴러로 완성됩니다. 마지막 장면까지 관객의 믿음을 시험하는 이 영화는, 공포의 정체가 ‘무지’와 ‘의심’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을 끝내 외면하지 않습니다.

 

불안은 어디에서 비롯되는가

<곡성>의 감정적 중심은 ‘불안’입니다. 영화 초반부터 관객은 분명한 위협이나 정체가 드러나지 않은 상황에서 계속해서 불쾌한 긴장을 강요받습니다. 외지인의 시선, 산속 오두막의 폐쇄적 공간, 낡고 눅눅한 시골의 분위기는 시각적으로도 감정적으로도 불편함을 조성합니다. 이 불안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강렬해지며, 사건의 실체를 파악하려 할수록 관객은 종구와 함께 더 큰 혼란에 빠지게 됩니다. 특히 딸이 이상 증세를 보이며 점차 망가져 가는 과정은 단순한 공포를 넘어 부모의 무력감을 극대화합니다. 공포는 귀신이나 악령의 형상보다, 아무것도 확실히 알 수 없다는 점에서 비롯됩니다. 감독은 이 감정을 끝까지 이용하며, 관객이 무엇을 믿고 무엇을 의심해야 할지를 지속적으로 흔듭니다. 영화는 전형적인 귀신의 등장이나 살인의 자극적인 묘사를 줄이고, 시종일관 모호하고 비현실적인 사건들을 배열함으로써 관객에게 명확한 서사를 허락하지 않습니다. 이러한 연출은 불안을 일시적 감정이 아닌, 전편을 관통하는 주된 심리로 만들며, 관객이 끝까지 긴장을 놓지 못하게 합니다. 결국 불안은 외부 요인보다 내부에서 커지는 감정이며, 인간이 스스로를 파괴하는 시작점이 됩니다. 이처럼 <곡성>은 불안이라는 감정의 실체를 해부하며, 두려움이란 사실의 부족이 아니라, 과잉된 상상과 억제할 수 없는 의심에서 비롯된다는 점을 강하게 환기합니다.

 

진실은 누구의 몫인가, 믿음은 어떻게 파괴되는가

<곡성>의 주제는 ‘믿음의 붕괴’입니다. 종구는 경찰로서 합리적 사고를 유지하려 하지만, 반복되는 의문의 사건과 초자연적 단서들 앞에서 점점 판단력을 잃습니다. 특히 무당 일광(황정민 분)과 가톨릭 신부 양이삼(김도윤 분), 그리고 마을에서 떠도는 소문 속 외지인의 존재는 각각 다른 해석을 유도하며 종구를 혼란에 빠뜨립니다. 영화는 전통 신앙과 서양 종교, 현대 과학을 충돌시키며 어떤 것도 명확한 해답이 되지 않도록 설계합니다. 이는 현대인이 의존하던 모든 신념 체계가 위협받고 있음을 상징하며, 불확실성 앞에서 인간은 결국 본능적으로 반응하게 된다는 메시지를 내포합니다. 종구는 딸을 구하기 위해 신부의 교리와 무속의식, 이성적 추론과 감정적 직관 사이를 오가며 점점 더 깊은 혼돈에 빠집니다. 어느 쪽도 진실이라고 확신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 그는 자신이 무엇을 믿고 있었는지조차 의심하게 됩니다. 영화는 이러한 혼란의 과정을 통해 신념이라는 것이 얼마나 취약하며, 위기의 순간에 얼마나 쉽게 무너지는지를 집요하게 묘사합니다. 종구는 진실을 찾기 위해 모든 것을 걸지만, 오히려 그 과정 속에서 자신이 가장 사랑하던 것을 의심하고 외면하는 선택을 하게 됩니다. <곡성>은 진실이 존재하는가를 묻기보다는, 진실이 무엇이든 간에 ‘믿음이 사라질 때 인간은 어떤 선택을 하는가’에 초점을 맞춥니다. 믿음은 개인이 현실을 이해하고 견디는 마지막 수단이지만, 그것이 흔들리는 순간 인간은 가장 잔혹한 선택마저도 스스로 정당화하게 됩니다. 이 지점에서 영화는 종교나 과학, 문화라는 틀을 넘어 인간 내면의 불안정한 본성을 정면으로 응시합니다.

 

누가 악인가, 인간은 언제 잔혹해지는가

이 영화가 전하는 핵심 가치는 ‘선악의 경계는 흐릿하다’는 데 있습니다. <곡성>은 악을 특정 존재로 규정하지 않습니다. 외지인이 진짜 악마인지, 무당이 오히려 마을을 해친 것인지, 아니면 종구 자신의 의심과 분노가 사태를 악화시킨 것인지 명확히 말하지 않습니다. 대신 영화는 악의 정체보다 ‘인간이 언제 잔혹해지는가’를 집중 조명합니다. 종구는 딸을 위해 싸운다고 믿지만, 결국 자신의 분노와 공포에 휘둘려 살인을 저지릅니다. 이는 인간이 진심으로 믿는 대상을 외면하거나, 잘못된 확신에 매몰될 때 얼마나 쉽게 파괴적인 존재로 변모할 수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곡성>은 괴물이나 귀신보다도 인간 내부의 취약성과 폭력성을 강조합니다. 더불어 이 영화는 ‘악은 멀리 있지 않다’는 사실을 끈질기게 부각합니다. 악은 특정한 형상이나 이름을 가진 존재가 아니라, 언제든 누구에게나 피어날 수 있는 감정의 일그러진 그림자에 더 가깝습니다. 종구는 처음엔 가족을 지키기 위한 가장으로서 움직이지만, 진실에 접근할수록 두려움과 증오에 매몰되어 도리어 파괴자가 됩니다. 이처럼 영화는 악을 외부의 절대적 존재로 묘사하지 않고, 혼란과 불확실성 속에서 스스로 선택한 길이 어떻게 악의 결과로 이어질 수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결국 우리가 두려워해야 할 대상은 외부가 아니라, 극한의 상황 속에서 드러나는 우리의 본성입니다. 선한 의도가 반드시 선한 결과를 낳지 않으며, 순수한 사랑조차도 잘못된 믿음 앞에서는 파괴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경고를 담고 있습니다. 이는 인간이 스스로를 얼마나 쉽게 파괴하는지를 극명하게 드러내며, 그 어떤 괴기한 존재보다 더 깊은 공포를 남깁니다.

 

🔚 마무리하며 _ 공포는 설명보다 감정으로 이해된다

<곡성>은 어떤 존재가 악인가를 밝히기보다는, 왜 인간은 믿음을 잃고 망가지는가를 치밀하게 추적합니다. 단순히 귀신이나 악령을 제거해야 하는 전통적 서사와 달리, 이 작품은 인간 내면의 혼란과 외부 정보에 대한 불확실한 해석이 어떻게 삶 전체를 무너뜨릴 수 있는지를 집요하게 따라갑니다. 결국 진실이 무엇인지보다 중요한 것은, 그 진실을 믿느냐 마느냐의 문제이며, 이 영화는 그 선택이 인간을 어떻게 바꾸는지를 보여줍니다. 설명할 수 없는 공포 속에서도, 인간은 무언가를 믿어야만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믿음이 잘못된 대상일 때, 결과는 파멸입니다. <곡성>은 공포 장르의 외형 속에 신념과 존재론에 대한 철학적 질문을 녹여내며, 공포란 단순한 귀신 이야기가 아니라 인간 내부를 향한 질문임을 입증합니다. 악은 반드시 형상을 가지고 다가오지 않으며, 때로는 가장 절박한 순간에, 가장 믿고 싶은 존재의 얼굴을 하고 우리 앞에 나타납니다. 이 영화는 끝내 그 어떤 설명도 명확히 내리지 않음으로써, 오히려 관객 각자의 믿음 체계를 시험에 들게 합니다. 누굴 믿을 것인가, 왜 믿는가, 그리고 그 선택은 결국 어떤 결과를 부르는가. 이러한 질문을 통해 <곡성>은 그 어떤 공포보다 더 깊고 지속적인 불안을 남기며, 관객의 내면에 오래도록 흔들림을 남깁니다.